추임새(CHUIMSAE)

승무–조지훈

블랙아쉬탕가 2023. 11. 6. 23:24

승무–조지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추임새(CHUIMSAE)'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팔八복福–윤동주  (0) 2023.11.09
십자가–윤동주  (0) 2023.11.08
길—윤동주  (0) 2023.11.04
거대한 뿌리—김수영  (0) 2023.11.02
공부—김사인  (0) 2023.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