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임새(CHUIMSAE) 19

다시 겨울 아침에—이해인

다시 겨울 아침에 —이해인 몸 마음 많이 아픈 사람들이 나에게 쏟아놓고 간 눈물이 내 안에 들어와 보석이 되느라고 밤새 뒤척이는 괴로운 신음소리 내가 듣고 내가 놀라 잠들지 못하네 힘들게 일어나 창문을 열면 나의 기침소리 알아듣는 작은 새 한 마리 나를 반기고 어떻게 살까 묻지 않아도 오늘은 희망이라고 깃을 치는 아침 인사에 나는 웃으며 하늘을 보네 ☆몸이 아파 하염없는 나락으로 밀려날 때 내겐 기도를 부탁할 옆집 먼 언니가 있다. 나 역시 전화기 너머 언니의 걱정 어린 눈빛을 알지만 눈 물을 쏟아낸다. '언니의. 기도 中에 내가 있으면 좋겠어...'그 순한 언니는 나를 항상 다독거린다. '걱정하지만 하느님께서 다 뜻이 있으실 거야. 걱정하지 마. 훌-털고 일어날 거야.'그렇게 나도 쏟고 나면 언니의 마..

추임새(CHUIMSAE) 2023.11.29

그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만리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추임새(CHUIMSAE) 2023.11.27

오래된 일–허수경

오래된 일 네가 나를 슬몃 바라보자 나는 떨면서 고개를 수그렸다 어린 연두 물빛이 네 마음의 가녘에서 숨을 가두며 살랑거렸는지도 오래된 일 봄저녁 어두킴컴해서 주소 없는 꽃엽서들은 가버리고 벗 없이 마신 술은 눈썹에 든 애먼 꽃술에 어려 네 눈이 바라보던 내 눈의 뿌연 거울은 하냥 먼 너머로 사라졌네 눈동자의 시절 모든 죽음이 살아나는 척하던 지독한봄날의일 그리고오래된 일 시집 허작가님은 보이던 것들에 기억을 더해 담담하게 읍조려주셨다. 나의 기억들도 같이 소환된다. 스치듯.

추임새(CHUIMSAE) 2023.11.21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작가의 말/허수경

시집에 들어가기 앞서 작가의 말에 페이지 넘어가지 않는다. —시인의 말 아직 도착하지 않은 기차를 기다리다가 역에서 쓴 시들어 이 시집을 이루고 있다. 영원히 역에서 서 있을 것 같은 나날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기차는 왔고 나는 역을 떠났다. 다음역을 향하여 2016년 가을 허수경 /시인의 세상을 떠나던 2018년 내가 아껴 읽던 황현상작가님도 세상에 따스한 말 뿌려놓고 별처럼 가셨다. 두 분의 작가님들은 얼마나 많은 별들을 품으셨던 것일까. 겨울 새벽녘의 별빛을 보며 윤동주의 시를 떠올리고 그 별빛 속에 작고하신 작가님들을 떠올린다.

추임새(CHUIMSAE) 2023.11.20

BECOMING 2 –MICHAEL OBAMA

이어서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이들 잘못이 아니다. 그들은 나쁜 애들이 아니다. 나쁜 환경을 견디려고 애쓰는 것뿐이다.••••••그리고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야 안 사실이 있다. 평소 무덤덤하고 과묵하지만 어느 집단에서든 가장 직설적인 편인 우리 엄마는 그때 2학년 선생님을 일부러 찾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최대한 상냥한 표현을 동원하여 당신에게는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이 없으니 차라리 슈퍼마켓 계산원일이 어울릴 거라고 조원해 주었다고 한다. 내 덧...ㅜㅜ 평소에 과묵하시다는 표현과 어느 집단에서 가장 직설적이다.라는 표현 우주의 양끝을 보고 있다는 느낌? 그 교사분은 지금 무엇을 하실까? 그 자신도 힘든 삶이지 않았을까? 난 슈퍼마켓 계산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할 수없다. 못하는 것이 아닌 할..

추임새(CHUIMSAE) 2023.11.19

별 헤는 밤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는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추임새(CHUIMSAE) 2023.11.18

자화상–윤동주

자화상 ‐윤동주 산 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읍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읍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엽서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읍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읍니다 1939년

추임새(CHUIMSAE) 2023.11.11

여우난 곬족(여우난골족)

여우난 곬족(여우난골족)–백석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 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모 고모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모 고모의 딸 승녀 아들 승동이 육십 리라고 해서 파랗게 보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던 말끝에 섧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모 고모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동이 작은 홍동이 배나무 접을 잘 하는 주정을 하면 ..

추임새(CHUIMSAE) 2023.11.10